2011. 7. 29. 21:07


일제 강점기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친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볼 때마다 분노가 치밀고 탄식이 나올 뿐이다.   그 의도는 차치하고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당시를 재단하는 그 협량한 지적 수준이 안타깝다. 지금의 눈으로는 좀체 이해되지 않을 당시 상황을 조금만 묘사해 보겠다.


전차를 타고 남대문 앞을 지난다. 전차의 차장이 “지금 전차가 조선신궁 앞을 통과합니

다” 하면 승객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남산을 향해 절을 한다. 학교에서 조선말로 인사라

도 한마디 하다가는 잡혀 간다. 너도 나도 창씨개명을 한 시기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확실히 알고 나서 친일 여부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당시 엘리트 학생들(경성제대, 보성전문, 연희전문…)이 인촌을 어떻게 평가했느

냐를 보아야 한다. 당시 민족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젊은이에게 인촌은 우상과 같은 존

재였다. 그리고 일제시대 학생들이 인촌과 함께한 장덕수(張德秀) 안호상(安浩相) 같은

분을 얼마만큼 숭앙했는지를 지금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들과 인촌의 말 한마

디가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일제 말기 학병제도가 시행된 직후인 어느 날, 보성전문학교(보전) 조회시간에 생긴 일이

다. 대학에는 원래 조회라는 게 없었지만 학병 모집을 위해 조회를 열던 시절이다. 배속

장교인 조선인 군인이 교단에 올라가 “너희들, 왜 학병에 지원하지 않느냐. 지원제라고

하지만, 형식만 지원이지 실은 강제야”라며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만일 너희가 지원

하지 않으면 보성전문은 없어져. 학교가 폐교된단 말이다. 알았어? 학병에 가!”


그러자 인촌 선생이 갑자기 교단으로 뛰어올랐다.

평소 교단에 오르는 일이 없던 인촌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인촌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교관 선생이 ‘학병은 겉으로만 지원이지, 사실상 강제다. 너희가 안 가면 보전은 폐

교당한다’고 했는데, 내가 어제 총독부에서 정무총감(총독 다음 서열)을 만났고, 조선군

사령관(일본육군 중장)도 만났다. 그 사람들이 현관에까지 따라 나오면서 ‘어디까지나 지

원이지 절대로 강제가 아니다. 잘 부탁한다’며 내게 거듭 당부했다.

 

또 지금 교관은 ‘제군이 지원을 안 하면 학교 문 닫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설혹 제군이 지원을 안 해서 학교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군대 가는 것은 자신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야지,  나는 제군의 부형에게 제군을 교육해 달라고 맡았지 자네들의 생명을 맡은 적이 없다.  가라 말라 할 수는 없다. 설혹 보전이 폐교당한다고 해도, 내가 자네들 교육을 맡았지 자네들 생명을 맡았나? 자네들이 잘 알아서 결정하소.”

 

곧이어 장덕수 선생이 교단에 올라가더니 ‘어디까지나 지원이지, 강제가 아니다’는 매일

신보에 난 일본의 발표문을 읽었다.

 

당시 어떤 학교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 학병 동원 총력전이 벌어져 선생들이 학생의 집을 방문하고 일경의 협박이 일상화하면서 지원하는 학생이 차츰 늘어갈 무렵,

 

매일신보에 ‘普專도 3명’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학병제에 반대하는 최일선에 선 보전에서조차 지원자가 나왔으니 다들 머뭇거리지 말라는 뜻에서 대서특필한 것이었다.

 

보전의 학병거부 움직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보전학생들이 학병에 지원하지 않자 일본 당국은 “학교측이 협조를 안 하는 것 아니냐.

교수들이 학생들을 붙잡고 설득해서 지원시켜야 할 것 아니냐”며 압력을 넣었다. 마침내

보전도 협조하는 시늉을 했다.    나도 선생들과 분담해 가정방문에 참여하게 됐다. 명륜동

에 살던 나는 집이 가까운 김해균 선생과 한 조가 됐다. 공산주의자인 그는 광복 후 월북

했다. 당시 박헌영(朴憲永)이 조선공산당 관련 사무실로 이용한 혜화동 집이 바로 김해균

선생의 집이다.

 

학병대상자 집으로 학병권유 방문을 가면 학생은 대부분 숨거나 피했는데 간혹 어떤 학

생은 예의상 차마 선생님을 뿌리치지 못하고 만나 주었다.

 

“아이고 선생님, 어쩐 일이십니까?”

“아, 이 사람아 말 마시게. 총독부에서 학생들 학병에 보내라고 닥달해 할 수 없이 오긴

왔는데…, 혹시 일본군이나 순사가 찾아오거든 우리가 자네더러 학병 가라고 몹시 조르

다가 갔다고 이야기 좀 해 주소.”

 

“선생님, 차라도 한잔 마시고 쉬었다 가시죠.”

“무슨 소린가, 이 사람아. 이 꼴로 온 우리한테….”

지나고 보니 참으로 눈물나는 광경이다.

과연 이것이 학병 가라고 강요한 것인가.

 

“총독부가 읽으라는 대로 읽겠다”


부민관에서 학병으로 떠날 학생들을 위한 장행회가 열렸다. 한국학생과 일본학생을 망라

해 각 학교의 학병대상자가 모였다. 나는 대상자는 아니지만 세 살 위 형이 학병 해당자

여서 함께 참가했다.

 

사회자가 “다음은 보성전문학교 교장 김성수 선생님의 장행사가 있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날 행사의 마지막이었다. 순간, 장내가 숙연해졌다. 한국학생은 물론이고 일본학생까

지 모두 긴장했다. 이런 때 ‘인촌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인촌은 주

머니에서 뭘 꺼내더니 말을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총독부에서 이걸 가져와서 이 자리에 나와 읽으라고 하기에 이제부터 읽겠

습니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그 문건을 읽어 내려갔다. 일본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이것이 친일인

가.

 

인촌이 학병을 ‘독려’했다고 하면 이것이 내가 아는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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